일기 35

주저를 참회

너랑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거야 나는 불안해서, 변화를 싫어하고 과거에 살고 싶어해 너는 불안해서, 앞으로 가려고 하지, 계속 변화를 주려고 하고 같은 곳을 보지 않는데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대로 멀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너와의 이야기는 최종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 깔아놓은 복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다 이해하고 알게 되는 순간 끝나는 거겠지 어쩌면 나는 드라마에서 살고 어쩌면 너는 소설 속에 사는지도 모르지 그래, 이대로 멀어지면 되는 거야 난 너한테 도움이 안 되니까 넌 강하지 똑똑하고 독립적인 사람이야 그런데도 네가 힘들다고 얘기를 한 건, 이런 네가 이상한지, 이상해도 받아들여질지 알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누구에게라도 나는 이상하지 않다고, 이상해..

일기 2024.04.13

흑곰을 위한 문장

흑곰에 대해서 쓴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를테면 흑곰의 마음 같은 것. 마음을 대신하는 눈길 같은 것. 눈썹 끝에 맺혀 떨어지는 눈물 같은 것. 머나먼 북극권으로 사라지는 한 줄기 빛 같은 것. 한줄기 빛으로 다시 시작되는 오래전 아침 같은 것. 산더미만 한 덩치에 보드랍고 거친 털옷을 입고 있습니다. 흑곰의 울음소리 : 우우우워워워워어어어우우우어어- 흑곰의 노랫소리 : 우우우워워워워어어어우우우어어- 흑곰의 일생에 대해 생각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득 가까워지기 때문에.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보이지 않던 속살이 보이기 때문에. 모음과 자음으로 꽉 찬 낱말처럼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것. 이를테면..

일기 2024.04.02

이제서야

이제 좀 여유가 생겨서 네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너의 시간과 생각을 생각해보고 있어 꽤 춥구나 너를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해 같이할 수 없으니까 외롭고 같이 했던 시간을 계속 떠올리니까 그리운 거야 하지만 같이 할 수 없다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각자 자기 길 가야하는 거지 서로 만났던 순간을 소중히 하고 괴로움 속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누고... 그렇게 인생 혼자 사는 거지 하지만 난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 희생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맞춰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넌 딱 맞는 사람이랑 같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우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고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 어쩌면 너랑 나는 같은 걸 원하고 있는데 각자가 가진 상처와 두려움 때문에 멀어지게 되는 것..

일기 2024.04.01

병상 고백

모든 것, 특히 인간관계는 타이밍이지 네가 어느 시점마다 원했던 것, 네가 들어주길 원했던 것, 네가 듣고 싶어했던 것, 네가 알아주길 원했던 것, 그걸 난 알지 못했고 네 마음을 보고 듣질 못했어 네가 했던 말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네 마음이 정말 어떤지 알지 못했어 그건 내가 겁쟁이이기 때문이지 넌 같이 네 우울을 반주할 친구가 필요했던 건데 난 너를 너무 좋아했고 너를 잃을까봐 너무 두려웠고 네가 든 잔이 독배가 될 것만 같았어 그 불안이 내 눈을 가렸던 거야 그래서 잔을 빼앗으려고만 했던 거야 그냥 너의 우울과 불안을 같이 마셨어야 했는데, 그냥 같이 옆에 있어야 했는데 결국 솔직하지 못하게 된 거지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고 해서 알지 못하는 게 아니고 말하지 않는다고해서 마음이 없는 게 아니겠지 하..

일기 2024.04.01